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호메로스 읽기, 드디어 끝났다.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개봉하기 전에 원서를 읽겠다고 시작한 것이 2025년 12월부터 약 4개월 반이 걸렸다.
등장인물이 많은 데다가 서사시 특유의 문체가 쉽게 읽히지 않고,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클로드를 열어 질문해가며 읽다 보니 시간이 더 걸렸다.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기엔 꽤나 다르게 느껴진다.
『일리아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킬레우스의 분노의 흐름을 다룬다. 아가멤논의 부당한 처우에 대한 분노로 시작해,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헥토르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마지막 24권에서 프리아모스와의 화해로 해소된다. 다만 주인공이 아킬레우스이긴 해도 작품 전체는 한 개인보다는 트로이아 전쟁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어떻게 엎치락뒤치락하는지를 보여주는 데 무게중심이 있다.
반면 『오뒷세이아』는 철저하게 오뒷세우스 한 사람의 이야기다. 트로이아 전쟁 이후 고향 잇타케로 돌아가기까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돌아간 뒤에는 아내를 뺏으려하는 구혼자들에게 어떻게 복수하는지를 그린다.
『일리아스』 세계관에서 가장 강한 전사는 당연히 아킬레우스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디오메데스가 더 인상적이다. 무려 신에게, 그것도 올림포스 12신에 속하는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에게 직접 상처를 입힌 인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레스는 전쟁의 신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이 신에게 직접적인 신체적 피해를 입힌 사례는 헤라클레스(반신이긴 하지만)와 더불어 사실상 둘뿐이다. (알로아다이가 아레스를 13개월간 청동 항아리에 가둔 사건이 있긴 하지만, 그쪽은 인간이라기보단 초인급 거인이고, 감금이지 직접적 위해는 아니니까.)
일리아스를 다 읽고 트로이아 전쟁을 다룬 영화 〈트로이〉(2004)도 봤다. 브래드 피트의 육체 말고는 전반적으로 실망스러운 영화다.
그렇게 느낀 첫째 이유는 비약이 너무 많다는 것. 위에서 언급한 디오메데스를 비롯해 원작의 주요 인물 상당수가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사실 일리아스를 영화로 옮기려면 〈반지의 제왕〉처럼 최소 3부작은 염두에 두고 만들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둘째, 신을 모두 지워버렸다는 점. 일리아스에서 트로이아 전쟁은 사실상 인간끼리의 전쟁이 아니라, 신들의 세력 싸움이 인간의 전쟁으로 발현된 사건이다. 신들이 전쟁을 두고 신경전을 펼치고, 직접 전장에 개입하기도 한다. 당연히 디오메데스가 두 신에게 상처 입히는 장면도 영화에는 없다.
시대 배경에 맞지 않는 복장이나 무기 같은 고증 오류, 원작과 다르게 묘사된 부분들도 있지만 위의 두 가지에 비하면 사소하다.
재미로 치면 단연 『오뒷세이아』 쪽이 훨씬 낫다. 10년에 걸친 개고생과 억울함이 21~22권에서 폭발하며 오뒷세우스 편 4명 대 구혼자 무리 108명이 맞붙어 도륙하는 장면은 묘사도 훌륭하고 카타르시스가 상당하다. 특히 학살이 시작되는 순간 오뒷세우스가 외치는 "이 개 같은 자들아." 라는 대사는 운율 맞춰 고상하게 흘러가던 서사시에서 직접적인 욕이 튀어나오는 순간이라 더 강렬하게 박힌다.
마법이나 신화적 요소도 오뒷세이아 쪽이 훨씬 풍부하다. 키르케가 동료들을 돼지로 만들거나 퀴클롭스와 싸우는 장면, 세이렌의 노래, 저승 방문 등 오뒷세우스가 겪는 고초에는 마법적인 이야기가 빼곡하다.
다음으로 무얼 읽을지 클로드에게 추천해달라고 하니,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추천했다. 주인공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아 함락 후 살아남아 로마 건국의 시조가 되는 인물이고, 호메로스 이후의 서사를 잇는 작품이다. 마침 내가 읽은 단테의 『신곡』에서 주인공 단테의 길잡이로서 베르길리우스가 익숙하니 합당한 추천이라고 생각한다.